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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共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지혜

행개련 0 1695

公共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지혜


김영섭(행개련 공동대표,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의 옛말에 ‘건축’이라는 말은 없었다. ‘큰 지혜로 짓는다’는 대조영(大造營)이야말로 건축에 합당한 말이고, 건축사(建築士)로 번역된 아키텍트(architect)는 대조영사(大造營師)로 번역돼야 한다. 명칭에서 보듯이 선조들은 건물과 마을을 큰 지혜와 궁리로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주위를 돌아보면 자연과 길, 그리고 건축이 한 몸 한 풍경을 이룬다는 큰 지혜를 잊어버린 채 아무나 메마른 지식으로 건물을 만들어 세우고 쌓아 올리고 있다.

건물 전면 거리에 노출된 곳에는 간판을 붙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구 붙여 놓는다. 외국인들 눈에는 이러한 한국의 도시 모습이 간판에 의한 전위예술을 온 국민이 하고 있는 도시라고 믿는 것 같다. 세계의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를 발행하는 유수한 프랑스 출판사의 하나인 오트레망(autrement)은 최근에 나온 ‘서울’이라는 제목의 도시 소개 책자 표지에 간판으로 뒤덮인 서울의 이면도로 사진을 크게 실어 놓았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까지 와 버렸는가. 그것은 지혜로, 큰 생각으로 건축과 도시를 만들지 않고 오직 탐욕과 이기심으로 건축과 도시를 세우고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세계의 도시가 벤치마킹하는 브라질 구리치바의 선언 ‘하나의 지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작은 물 한 방울이 커지고 커져 물의 근원이 되고/그 물의 근원은 커지고 커져 강이 되고/아름다운 강이 흘러 대지 전체를 풍요롭게 하고/강물은 아름다운 바다로 변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목표가 있고, 같은 행성에서 살고 있다. 이 행성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여기서 물방울을 하나의 건축물로,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로 바꿔 본다면 한국의 도시가 하나의 몸체라는 것, 자연과 도시 역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건물 앞의 거리 또한 너와 내가 함께 쓰고 우리와 후손들이 함께 가꿔야 할 나의 땅이자 모두의 공용 공간임을 자각할 때 사람들은 내 집 앞을 다시 보는 지혜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공공(公共)의 시설이나 공간 가꾸기에 이 시대 최고의 건축가와 조경가, 예술가들이 참여해야 하고 반드시 이들을 초대해야 하는 이유다.

행정가와 지자체 장(長)들 또한 현행 법규와 예산 사용 지침을 위배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이 시대 최고의 작가들을 공공 공간의 탄생 과정에 기여시킬 수 있다. 국가의 건축정책을 기획하고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공무원과 민간위원도 어떻게 하면 공공의 공간 창조에 이 시대 최고의 디자인 능력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복잡한 절차 없이 간편한 제도로 ‘대조영사’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지를 궁리해내야 한다.

공공디자인은 아직 법률상 용어 정의가 확립되지 않았고, 부처 간에도 일치된 추진 체계 없이 소관 법령에 따라 분절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다행히도 행정안전부에서는 건축·도시·조명·조경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건축가와 공공디자이너가 지속가능한 도시와 주변의 공간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우선 생활 속 편의와 안전을 도모하고 ‘환경친화적 개발과 총체적 공간환경 디자인’이라는 목표를 구체화해야 한다. 행안부는 공공디자인의 개념 정의와 추진체계를 정립하고 공공디자인 정책을 지자체 및 다른 부처와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데 필요한 고려 사항들을 명확히 하려 한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는 총체적인 도시와 농어촌의 풍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돼야 할 것이다.

출처: 문화일보 2010년 12월 15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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