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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설명·법률용어 ‘우리말로 쉽게’

행개련 0 1868

정책설명·법률용어 ‘우리말로 쉽게’


고영회(행개련 과학기술위원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최근 서울 주변에 있는 산을 올랐는데 ‘산에서 담배를 피우는 자는 3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봤다. ‘담배를 피우는 자’라는 문구가 주는 느낌이 고약하다. ‘3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부분도 자연스럽지 않다. 주어인 ‘자는’과 동사 ‘부과됩니다’가 문법에 맞지도 않다. ‘부과됩니다’의 주어는 ‘과태료가’다. 그러므로 ‘자는’은 ‘자(사람)에게는’으로 바뀌어야 문법상 오류가 아니다. 안내를 위한 글은 쉽게, 뜻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적어야 한다. ‘과태료를 물 수 있으니 담배를 피우지 말자’는 안내 문구를 굳이 이렇게 일본식 말투에, 어려운 문어체로 쓸 필요는 없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30만원을 물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충분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같이 주민을 상대로 일하는 기관은 자신의 정책을 가장 쉽게 알려야 한다.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한 주민이 그 정책에 발맞출 수 있어야 정책은 비로소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다. 정책을 홍보하면서 주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쓴다면 할 일을 제대로 못 할 뿐더러, 거꾸로 하는 셈이다.

법조문도 그렇다. 법령을 읽을 때마다 너무 어려워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법령은 왜 어렵게 쓸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려 할 때 반대 목소리가 나왔었다. 그 이유는 ‘백성이 글을 배워 법문을 알면 악용하여 법을 농간할 것이다. 백성이 쉽게 알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선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우리말글 독립운동의 발자취’, 이대로 지음).

설마 지금도 시민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법 규정이 어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법은 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적어야 한다. 의무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법답다.

‘우리말을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리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외국기업은 회사명을 반드시 중국 글자로 써야 한다. 그것을 규제하는 법령이 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외국기업이 현지 사람을 상대로 사업할 때 현지 사람이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쓰는 게 맞다. 맥도날드, 코카콜라, 스타벅스 같은 기업들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쓰는 이름을 맞대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로만 크게 적거나 마지못해 한글로 적더라도 영어 밑에 작게 붙이는 식이다.

얼숲(페이스북을 부르는 우리말)이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얼숲에서 자기 이름을 영자로 쓰는 사람이 많다. 외국에 있는 친구와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단다. 친구 가운데 외국 사람이 더 많으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한글로 이름표를 다는 게 당연하다. 불편함을 느낄 외국인을 위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배려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으로 광화문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자고 하면서 이름표는 남의 글자로 달았다. 서둘러 만들다 보니 금이 가고 새도 벌어지고 엉망이 돼 다시 만든다고 한다. 이 시대의 재료와 기술로 만든 우리 건축물에 건물 이름은 딴 나라 글자로 쓴다고 한다. 우리 역사라는 틀로 바라본다면 한글로, 이 시대의 서예가가 쓴 글자로 달아야 한다.

올해에는 나다움, 우리다움, 공무원다움, 우리사회다움, 우리나라다움 등 온갖 다움을 굳혀 나가는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말을 이해하기 쉽게, 자주 쓰는 것’이다.

출처: 매경이코노미 제1596호(2011년 3월 9일자) <오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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