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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된 정치

행개련 0 1644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된 정치


임도빈(행개련 정첵위원, 서울대 교수)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한 이후 정치권에 후폭풍이 불고 있다. 비(非)수도권 의원들이 ‘산업 집적(集積) 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의 시행규칙 개정안을 비롯한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서 과학비즈니스벨트라도 지정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그러자 수도권 의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역 이기주의와 표(票) 포퓰리즘에 매몰된 여야 의원들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신기한 일이다. 대운하 사업, 4대강 사업에는 여당과 야당이 분명히 구분됐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여당의 입장과 경제성도 없고 환경도 파괴한다는 야당의 입장이 대조를 이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야당이 건설을 하자는 입장이다. 이제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진영에는 여야 의원이 뒤섞여 있다. 국회의원들은 이처럼 일관성도, 예측 가능성도 없는 것인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나라에서, 이렇게 중요한 사안이 생기면 그 분야를 연구한 전문가도 존중하지 않는다. 모두가 전문가다. 특히 정치인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말을 하는 전문가만 전문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평가위원의 구성이 편향적이어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데, 왜 백지화 발표 이후에야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상황이 오리무중으로 얽혀 가는데 이들 이해가 안되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이다. 정치인들은 자기 신념이나 공천을 해서 당선되게 해준 소속 당의 입장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내년 선거에서 나올 표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 지역 이기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자신의 표는 많아진다는 심리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의 이런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유권자들이다. 하지만 신공항이나 과학벨트 같은 장밋빛 청사진 앞에서는 ‘지역 발전’이라는 색안경 때문에 국가 백년을 위한 정론을 펴는 데 목소리가 작아진다. 연간 경제효과 18조원, 지방세 납부액 242억원, 3만5000명의 고용효과가 있는 인천국제공항 같은 이익이 그대로 자기 지역에 떨어진다면 반대할 주민이 누가 있겠는가. 정치인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역감정을 앞세워 ‘득표 영리’를 취하려 든다.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 그동안 정치논리에 의해 우후죽순 격으로 건설한 14개 지방공항 중 적자를 면한 공항이 3개밖에 안된다. 그런데 이들 부실한 공항이 신설될 때 일익을 담당한 정치인들 중 책임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극도로 불확실한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국책사업을 놓고 지역 이기주의에만 몰입하는 정치 풍토는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후 책임을 지는 정치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하루 평균 이용객 24명밖에 없는 양양공항의 건물에 ‘이 공항은 ○○○ 국회의원의 노력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크게 내걸어 놓는 것이다. 아울러 타당성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와 당시의 장관 등 실패한 정책의 결정자들 이름도 아주 크게 새겨놓아야 한다.

나라 빚은 폭증하고 있는데도 눈앞의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에 대규모 국책사업을 뒤흔드는 이들에게 제동을 걸 방법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특히 신공항처럼 오랜 시일이 걸리는 사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수도권 규제 완화와 같이 국가의 미래를 건강하게 해줄 정책 기조를 발목잡고 비트는 국회의원들에게 특정 지역의 발전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는 냉철한 판단을 기대하기는 정녕 연목구어인가.

출처: 문화일보 2011년 4월 8일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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