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중

독서 이력제의 문제점을 보완하자

행개련 0 1510

독서 이력제의 문제점을 보완하자


고충석(행개련 회원, 제주대 교수·전 총장)


서정주 시인은 그의 詩 「자화상」에서 ‘젊을 적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대다수의 위인들을 키운 건 8할이 독서인 경우가 많다. 샤르트르는 어릴 때 병약하여 조부의 서재에서 놀며 동서고금의 책들을 섭렵한 결과, 세계 문학사와 철학사에 남는 위대한 저술을 남겼다.

시카고 대학은 미국의 실업가 록펠러가 세운 학교인데 1986 ~ 1929년까지는 3류 대학에 불과했다. 1929년 허친스가 총장으로 부임했고, 그는 100권의 고전을 읽은 학생들만 졸업시켰다. 학생들은 100권의 책을 읽고 난 뒤,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위인들의 인격과 사고방식이 그들에게 전이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허친스가 총장으로 재임하던 10년 동안 시카고 대학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고, 노벨상 수상자가 70여 명이 배출되어 시카고 대학은 ‘노벨 박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세계의 부호 빌게이츠도 나를 키운 것은 어릴 적 다니던 동네의 조그만 도서관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의 위대한 지도자들도 그 궤적을 따라 가보면 대체로 독서광이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leader=reader)이라는 항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어떠한 영역에서든 독서를 생활화 하지 않은 사람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사례의 교훈은 두말한 필요 없이 독서의 중요성이다.

올해 초부터 초.중.고 12년간 학생들이 독후감을 ‘독서교육 종합지원시스템’ 사이트에 입력하는 ‘독서이력제’가 시행되었다. 정부가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히겠다고 도입한 제도이지만 입시 수단으로 변질돼 독서 풍토를 망친다는 비난이 높았다. 학생들이 읽지도 않은 책을 학원에서 배운 대로 요약해 기록하거나, 학부모나 학원 강사가 대신 입력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지금까지는 학생이 입력한 내용이 그대로 학생생활기록부에 올라갔지만, 앞으로는 담임교사의 검증을 거쳐 입력하도록 하겠다’고 개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개선안은 문제투성이다.

첫째, 담임교사가 어떻게 대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나. 둘째, 학생들이 독서교육 종합시스템에 입력한 내용을 대학입학사정관 전형 등에 제출할 수 있기 때문에 독서이력제가 입시용으로 변질되는 걸 막는 데 한계가 있다. 셋째, 독서 이력을 입시와 연결하는 제도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사교육과 대필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독서를 입시와 연결해서 억지로라도 책을 읽히려는 정부의 고육지책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보다 합리적인 개선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독서교육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독서 습관을 어릴 적부터 갖도록 하는데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나라의 속담이 독서습관 형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려면 독서를 좋아하고 독서를 통해서 기쁨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공자도 논어에서 知子보다 好知者, 호지자 보다 樂知者가 학문연구 있어서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어떻든 책 읽는 작업이 좋고 재미있도록 그 독서 권장계획을 짜야 한다.

제대로 된 독서교육이 이뤄진다면 독서는 인성과 창의성, 공부(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배양)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다. 관건은 학생들이 이런 독서의 효용을 깨닫고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예컨대 학교 별로 대학 입시와 연계하지 말고 자체 실정에 맞는 독서권장 방안을 마련해서 시행토록 하고 그것을 시ㆍ도 교육청이 확인-평가해서 그 성과에 따라 해당 일선학교에 유의미한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

브라질 어느 도시에 있는 ‘지혜의 등대’라는 조그만 도서관들처럼 자치단체에서도 마을 별로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서 넉넉하지 못한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틈나는 대로 마을 도서관에 들러 만화도 보고 책도 같이 읽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등의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선안을 마련한다고 해서 독서 이력제가 지니고 있는 근본 취지나 정신을 망각해서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제도든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착되는 것이다. 독서 이력제를 봉사활동 점수제와 비교하면 이 제도의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봉사활동 점수제도 초기엔 부모가 아는 사람을 통해 하지도 않은 봉사활동 실적증명을 받아내고 1시간을 4시간으로 늘리는 등 부작용이 많았으나 지금은 정착 단계에 있다.

독서 이력제의 문제점을 잘 보완하여 현장 적합성이 있는 개선안을 마련한다면, 이 제도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학교 교육의 꽃이 될 수 있다.

출처: 제주의 소리 2011년 5월 26일 <고충석 칼럼>

[이 게시물은 행개련님에 의해 2017-07-04 17:02:48 토론중 2에서 이동 됨]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