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중

공익(公益)이 없는 사회

행개련 0 1361

공익(公益)이 없는 사회


이승우(행개련 교육정책위원장, 군장대 총장)


최근 부산저축은행의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공익(公益)이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익이란 공공의 이익, 즉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말한다.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은 개인의 금전적 재화를 유치하여 보관 관리해주고 금리의 대가인 사익(私益)을 총합하여, 그 사익간의 타협과 집단 상호작용의 산물로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 구성원의 전체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다. 사익을 보장해 주어 그 실질적 과정과 절차적 국면을 통하여 정당한 이윤을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다수의 이익을 도출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의 공익적 자세이다.

그런데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사익을 보장해 주어 공익을 창출해야 하는 상(商)도덕과 경제(經濟)윤리를 망각하고, 오히려 공익적인 사익을 담보삼아 과도한 욕심을 부려 우리 사회의 금융질서를 무너뜨리고 말았으니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장점인 능률과 실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패악을 저지른 셈이다.

이러한 금융적 질서의 실체적이고 규범적이며 도덕적인 의미로서의 공익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이라는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의 사익과 공익의 이익적 갈등을 조정하여 사익의 총화를 공익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금융감독원마저도 금융이익의 공익적 조정과 관리는 아랑곳 하지도 않고 사리사욕을 조장해주며 그 욕심을 가득 채워 서로 나누어 먹었다. 돈 앞에 감독을 빌미삼아 공정이고, 정의이고, 인간존중의 공익을 추구하는 공동사회의 의식은 안중에도 없이 돈 챙겨 먹기에 급급했다.

「근사록(近思錄)」의 치법(治法)에 따르면 공직자가 ‘사욕을 멋대로 하여 법도를 깨면, 그 때문에 백성은 시달리고 있다(縱欲敗度下民困苦)’고 하였다. 재화의 사욕에 눈이 멀어 앞뒤 안 가리고 법도를 넘어서 금융감독원의 공직자들의 파렴치한 행태가 얼마나 많은 서민 예금자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는가. 공직자들의 공익을 위한 마음이 실종된 결과이다.

공익이 없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사회는 관계적 존재를 바탕으로 협동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그 협동은 서로의 상생을 위한 공익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계적 존재의 사회에서는 사익과 공익간의 갈등이 있을 수 없으며, 형평과 복지의 공익적 존재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사리사욕이 난무하여 공익이 실종된 사회가 되면 그것은 이미 사회가 아니다. 패륜과 패덕이 판을 치는 주객이 전도된 아노미적 인간 집단일 뿐으로 나라는 존망의 기로에서 누란의 위기에 처할 뿐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공익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 사람마다 공익정신이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사리사욕이 우선이다. 그래서 천륜도 무색하게 부모를 살해하고, 자식을 버리며, 남편과 아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그 돈의 가치로 영예와 명문을 만들다 보니 가진 돈만의 전부가 사람의 격(格)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국민의 공익을 추구해야할 공직사회가 사리사욕의 돈으로 감추어진 채 자리가 만들어지고, 국민을 바르게 이끌고 다스려야할 정치가 결국은 재화의 이익적 사리사욕 때문에 난투극이 벌어지고, 공직자가 구속 수감 되며, 정치인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사회이고 보면, 무엇이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행복과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고 후세대에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처럼 공익이 실종된 사회를 후세대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공익이 없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물려 줄 수도 없다. 공익이 없는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국민들도 공익을 위해 희생과 양보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사회, 공익이 가득한 사회로 우리는 만들어가야 한다.

출처: 전북도민일보 2011년 6월 29일 <전북춘추>

[이 게시물은 행개련님에 의해 2017-07-04 17:02:48 토론중 2에서 이동 됨]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