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중

수능시험문제의 저작권 논란

행개련 0 1675

수능시험문제의 저작권 논란

고영회(행개련 상임집행위원,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지난 9월 수능 모의평가 직후 사교육기관에 ‘저작권 침해 중지 경고장’을 보냈습니다. 경고장에는 “수능 문제는 응시생들의 수학능력을 평가하고 인재를 선별하기 위한 정신적 노력이 반영된 창작물로서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된다. 문제지와 정답을 허락 없이 싣는 것은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징역 5년 또는 벌금 5천만 원까지 벌을 받을 수 있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라고 주장했다 합니다.

이에 따라 사교육기관들은 자체 누리집에서 문제지와 답안지를 지웠고, 그 대신 평가원 누리집에서 볼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걸고, 해설방식도 (문제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강사가 읽는 식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나아가 교육과학기술부와 평가원은 “사설업체가 수능 기출 문제집을 제작하는 것도 금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지만, 이미 유통된 기출문제집에는 대응하지 않겠다. 앞으로 저작권료를 내면 활용을 허용할지는 논의 중이다. 교육방송(EBS)에는 수능문제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겠다.”며 예외를 인정해줬다 합니다. 이렇게 하면 내년부터 수능 기출 문제는 교육방송만 낼 수 있습니다. 교육원은 대입수학능력시험문제(수능시험문제)에 저작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설입시학원은 시험문제를 쓰지 못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겠습니다.

저작권은 지식재산권 중 하나입니다. 저작권은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담은 창작물입니다. 대표로 삼을 저작물은 음악, 영화, 그림, 소설, 컴퓨터프로그램입니다.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과 저작재산권(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 저작물작성권) 두 가지 권리로 나뉩니다. 저작인격권은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으므로, 이번 일은 저작재산권 문제입니다. 저작권제도에서,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이 저작권을 갖고, 저작권을 넘보면 민사상 피해보상 책임이 있고, 형사상 처벌을 받습니다.

저작물이더라도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작권법 7조에 규정한 것으로 ‘법률, 국가나 지자체의 고시, 판결, 국가나 지자체가 작성한 위 편집물, 시사보도’ 5가지는 저작물이더라도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작성한 저작물에 독점권을 주는 것이 일반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육원은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 문제를 냅니다.

교육원이 만든 수능시험문제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저작권이 있느냐가 정해집니다. 저작권법에는 ‘고시, 공고, 훈령 그 밖에 이에 유사한 것’이라 했습니다. 법에는 시험문제 그 말 그대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밖’란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에는 국가가 출제하여 공표한 수능시험문제도 들어간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이 비슷한 사건으로 ‘건축표준시방서' 사건이 있습니다. 건축표준시방서는 건축물의 안전 및 품질향상을 위해 시설물별로 표준적인 시공기준을 정리한 것으로 건설교통부(지금은 국토해양부)가 예산을 들여 학계와 단체에 의뢰하여 만든 것입니다. 법원은 "표준시방서의 공익 성격에 비춰볼 때 저작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또, 저작권법 28조는 ‘공표된 저작물은 교육, 연구 등을 위해 인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설학원이 수능문제를 인용하면서 문제풀이를 설명한다고 하여 그것을 저작권 침해라 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나아가 사설입시학원은 안되고, 교육방송에는 허락하겠다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교육방송에 나온 문제를 수능문제와 억지로 연계시킨 것도 보기 안 좋습니다. 입시 관련 일이 경쟁제한산업이 아닌데, 사실상 문턱을 높이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렇게 무턱을 높이면 교육이나 입시 질이 높아질까요?

국가가 만든 입시문제는 국가예산이 들어간 공공재입니다. 공공재는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과부와 평가원은 수능문제에 저작권이란 칼을 휘두르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것보다 원성이 높은 입시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낫습니다.

*출처: 자유칼럼그룹. 고영회 <산소리>. 2012년 10월 23일

[이 게시물은 행개련님에 의해 2017-07-04 17:02:48 토론중 2에서 이동 됨]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