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돋보기

우리의 규제현실과 실천 과제

박수정 0 1660

우리의 규제현실과 실천 과제

박 수 정(행정개혁시민연합 정책실장)


체감 규제 그리고 품질 관리

새 정부 들어 대통령이 규제개혁 추진 상황을 직접 점검하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이 종합지원 기능을 담당키로 하는 등, 규제개혁을 국정운영의 최우선에 둔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중에는 총 5천 1백16건(2007년 12월 31일 기준)의 규제 가운데 경제단체 건의사항 1천 6백64건을 포함한 2천여 건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한다. 정부업무 보고에서는 시장경제에 맡겨야 할 규제에 대한 대통령의 지적이 계속되고, 입지규제 완화와 관련된 정책들도 연일 발표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정책입안자의 ‘규제는 무조건 나쁘고 혁파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과 강박증이 엿보이기도 해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우려 중에는 규제에 대한 오해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릇 규제에는, 좋은 규제 나쁜 규제가 있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있고, 소수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도 있다. 규제 하나하나가, 어찌 보면 우주라 할 수 있다. 규제가 생겨난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누구도 이후의 환경을 예측하여 완벽하게 만들기가 힘들다. 또, 일정이 촉박하다 보니 규제를 무조건 없애고 난 후의 문제들에 대한 면밀한 사전 장치 마련에 소홀해지기 쉬운 구석도 있다. 더구나 정부의 말대로 따라 했다가는 정작 열심히 규제를 없애는 데 노력한 공무원에게 돌아올 것은 감사원의 감사뿐일 거라는 걱정도 있다.

규제문제와 관련해서, 건수와 분야의 함정은 물론 있다. 문제는 사회적 파급력이 큰 핵심규제의 완화에 있을 것이다. 가능하면 국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끔 관련 규제는 완화하고 소비·안전 관련 규제들은 강화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고 정비하는 데 시간이 걸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노력들은 무척 힘이 드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데는 시민 대부분도 공감할 것이다. 정부가 너무 많은 규제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민들 편에서 보면 건축․보건․환경․소방․노동․통관․금융․토지․광고․학원 등 실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분야에 규제들이 아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 관련 규제 면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규제강화와 규제완화가 '체감'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도 못하다. 조직화되어 있는 힘 있는 일부의 의견만이 반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조직, 공무원 수, 세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환경이 더 나아지거나 시민의 생활이 더욱 안전해지고 일자리의 질이 나아지지도 않는다. 지난 정부가 '규제체감 지수'라는 것을 만들어 시민들의 만족수준을 측정한다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왜 이런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선 법령상의 문제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소방 관련법은 무려 122개에 이른다. 이는 난마처럼 얽혀있는 관련법으로 인해 과다한 규제 가능성과 부패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소방방재 관련 장비나 기술의 발전을 법이 따라잡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 방재안전 분야는 통합기술이 적용되는 만큼 관련 법령의 정비도 시급하다. 또, 진흥․지원과 관련한 최근의 입법 움직임은 특정 이익단체에 특혜를 줄 소지가 많다는 우려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법안, 규정, 지침 등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상위 법령 수준에서 규제개혁을 했음에도 시행단계와 일선 행정기관에서 고시나 지침으로 남아 부정부패 비리의 소지로 작용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문제의 또 다른 요인에는, 규제대상의 모호함이나 관할 다툼이 있다. 흉물스런 건축물, 가로시설물, 옥외광고 등이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관계부처의 관련법 간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하여 억지로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골몰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는 또다시 관련법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통합적 제도개선안을 만들고 기구를 만들고 규제를 새롭게 만드는 수고를 더할 뿐이다.

지난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소속 규제개혁위원회는 쉬운 용어와 올바른 문장 사용을 위해 ‘국어전문가 활용 매뉴얼’을 만들어 각 행정부처가 규제관련 법안을 만들 때 참고하게끔 배포하였다. 규제관련 법조문이 이해하기 쉬워야 규제순응도가 높아진다는 취지에서였다. 이처럼 시민들의 편에 서서 법률 하나하나 제대로 살피는 노력도 더해져야 한다. 사회 각 분야의 법률들이 모호하고 복잡하고 불확실하여 일반시민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고 법 체제까지 기형적으로 되는 일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에 법에 대한 신뢰마저도 깨지기 일쑤다. 거기에다 법집행의 대리인인 행정은 가능하면 민간부문에 대한 개입을 확대하기 위해 편리한 대로 법을 만드는 것을 다반사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규제만능주의, 규제홍수라는 부정적인 인식들이 쌓인다.

재경부[재정기획부]가 금융법에서 시도하겠다고 지난 정부에서 밝히기도 했지만 일부 금지항목만 규제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법 체제를 전환해야 하는 분야, 그리고 그 정도도 차제에 국민적인 논의와 지혜를 모아 정리해갔으면 한다. 지금은 정부의 과도한 법률을 통한 간섭을 줄여 가는 것이 절실할 때가 아닌가 싶다.

새 정부가 정부조직 개편 때 규제 50건당 해당부처 정원 한 명씩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공무원 수를 직접 연계해 줄이는 데에는 공이 많이 든다. 한편으로는 인력을 많이 늘리지 않고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확대할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사업자단체·소비자단체·시민단체 등 제3섹터를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자체는 최소의 감시비용을 민간단체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식품안전 규제 같은 이른바 민관 ‘공동생산’에 참여케 함으로써 자치단체 공무원의 증원 없이 규제 투명성과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식품안전·산업안전·규제업무는 민간 자율 규제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요컨대, 대민접촉과 서비스 전달 기능이 아닌 권한행사, 인허가 등 규제, 사생활 간섭 관련 인력은 줄여야 한다. 복지분야와 식품안전 분야 그리고 양극화 속 소외계층 지원 분야는 인력을 늘려야 할 것으로 본다. 그래야 시민들이 체감하는 규제의 완화와 강화가 균형을 이루지 않을까 한다.

규제개혁 추진체계의 실효성 제고

노무현 정부는 국무총리실의 규제개혁위원회와 규제장관회의, 규제개혁기획단 등을 운영하며 규제개혁을 추진하였다. 법적 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를 제외하고는 사실 사회적 요구에 따라 운용된 측면이 있다. 새 정부는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위원회 산하에 공공혁신․규제개혁추진단과 국정기획수석실 등이 중심이 되어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규제집행이야 각 부처와 연계하여 진행해가겠지만 사후점검, 자원집행, 평가, 피드백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 규제개혁 기구가 이를 상시 점검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각 과정별로 국민권익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감사원, 각 부처와의 입체적인 네트워크 시스템도 잘 설계해야 할 것이다. 과제는 넘쳐나지만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서 국민들의 체감 규제개혁이 드물고 그 실효성 또한 적었던 과거를 돌이켜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개혁기구가 모든 것을 다하려는 의욕과잉보다는 개혁성과 합리성을 상시 관리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규제개혁 기구가 철저히 민간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면 한다.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방안도 제고되어야 한다. 실질적으로 경험 많은 현장의 전문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전직 공무원이 개혁기구의 위원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지는 법은 규제에 대해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있는 맹점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 법으로 만들어진 건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향후 규제개혁 기구가 더욱 견고하게 디자인될수록 행정부는 물론 이해관계자들의 규제 우회로로 국회가 이용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규제 집행역량 강화를 위한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역량 강화는 중요하다. 사실 시민들과 맞닿아 있는 대부분의 일반 규제권한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에 있다.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교육과정 개발도 중앙에서 지원해야 할 부분이다. 규제개혁 실천 공무원에 대한 인센티브 체제와 잘못됐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 구현은 큰 과제다. ‘대불공단의 전봇대’ 문제는 관련 공무원들이 이미 인지하고 어찌 해보려고도 했지만 사후 감사원 감사에 책임추궁을 당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체제라면 누가 자신의 자리와 규제 줄이기를 바꾸려 하겠는가? 향후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공무원들의 규제집행 행태․문화의 문제도 바꾸어나가야 한다. 예전에 사무실에 ‘산자부 소관 등록규제 제로베이스 검토서’에 대한 의견 제출에 협조해달라는 공문이 단체에 날아들었다. 공문은 9월 30일자지만 등기로 사무처에 도착한 건 10월 10일이었다. 무려 1,339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었다. 산자부 전체 등록규제(416건)에 대한 의견을 10월 12일까지 달라고 했다. 이틀 안에 이런 자료를 읽고 의견서를 내달라고 한 것이다. 협조를 구하는 행위는 가상했으나 진정한 의도에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견제출 과정을 거쳤다며 보고서 한줄 쓰기 위해 몇 십 개 관련 단체․협회․유관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그토록 두텁고 무거운 우편물을 부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담당자들이 먼저 떠올랐다. 받아보는 단체와 기관들의 반응도 궁금해졌다. 시민사회에 대한 의견 수렴을, 마라톤 반환점 넘는 지점도 아니고 결승선을 앞두고 요식절차 삼아 해오던 우리의 일그러진 행정문화는 여전한 듯하다. 정부에서 하는 일에 막바지에 슬쩍 끼워줄 게 아니라 ‘제로베이스 시민의견 수렴’이 절실하다.

규제개혁과 관련하여 정부에 정책제안을 하고, 관련 기관의 실무 담당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가지는 자리가 있었다. 문제를 만드는 곳에서 문제 해결책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한 부처의 신참 사무관이 불만을 터뜨렸다. ‘시민단체에서 제안서 달랑 냈다고 이렇게 사람을 왔다 갔다 하라고 할 수 있느냐, 얼마나 바쁜데 당장에 실현가능하지도 않은 일로 이런 모임을 갖느냐’는 불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고압적이고 비협조적인 자세로 악명이 자자했던 부처였다. 진작부터 예방주사를 맞아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고성까지 내지를 정도였다. 제도적인 문제가 있어 개선방안을 찾아내고 해법을 모색하는 게 누구의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러니, 규제를 왜 해야 하는지 공무원에게 입증하게 하는 시스템으로, 규제집행 권한의 행사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의 입장으로 공무원들의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아직도 부당한 정부의 행정처리로 손해를 보거나 불만을 품은 국민들이 민원기관을 전전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정부의 잘못된 행정 처리로 인해 소비자나 국민들이 손해를 보면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많다.

만능 정부는 없다

대통령이 썬팅 규제를 풀어라, 위생교육이나 친절교육 등을 시장에 맡겨라, 일일이 간섭할 정도로 규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새로운 규제가 또 나타나고 사건이 있는 곳에 규제는 강화된다. 업역 다툼도 치열해지니 갈수록 규제에 대한 정부의 심판기준이 중요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취향은 더욱 다양해지고 규제예측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 모든 것을 정부가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는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민들이 각인해야 한다. 더 이상 정부가 국민을 아이처럼 취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실제 시민들이 원하는 규제개혁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법규 하나가 만들어지고 제도 하나가 마련될 때마다 시민들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곰곰이 따져보고 평가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정부에만, 관련 이해당사자들에게만 이 같이 어렵고 누적된 문제들의 해결을 맡겨놓을 수는 없다. 관련 단체들이라도 나서서 이러한 규제들을 발굴하고 ‘품질관리’에 나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극을 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시민사회의 역량의 강화와 집중이 필요한 부분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규제개혁과 관련해서 ‘공익’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잣대를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만들어가지 않으면, 승산은 없다.

*출처: 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사회> 2008년 4월호 특집 '규제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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