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포럼

제 길을 벗어난 국민경선제

행개련 0 527

제 길을 벗어난 국민경선제

고영회(행개련 상임집행위원,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야당이 대통령 후보를 국민경선제로 뽑고 있습니다. 국민경선제는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공직 후보 선출 과정에 직접 참여해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입니다. 국민의 정치 무관심과 대의원 매수, 정당의 1인 독주나 상의하달식 당 운영 방식 등 잘못된 선거 관행을 개선하고 대중 정당으로 만들고, 참여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제도라 합니다.

취지를 생각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정당은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정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공통된 정책에 따라 일반 이익을 증진하고자 결합한 정치결사’라고 정의합니다(두산백과). 정당에서 내보낼 후보는 정당 색깔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지금 민주통합당 선거인단은 당원 약 11만 명에 국민경선단 약 107만 명이고, 당원이나 국민경선단 똑같이 1표로 친다 합니다. 당원보다 당 바깥에서 들어온 유권자가 훨씬 많으니 주인은 별로 없고 손님이 넘칩니다.

이렇게 뽑은 후보를 정당을 대표하는 후보라 할 수 있을까요? 국민 생각을 반영하는 절차는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반영비율은 절반 아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당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국민경선단을 모집하는 과정을 보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립니다. 당 차원에서 적극 모집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국민경선단은, 표를 얻어야 하는 경선후보들이 자기 조직을 동원하여 가입시킵니다. 그러니 일반 국민을 참여시킨다는 것을 자랑한다면 사실과 다릅니다. 일반 국민을 참여시킨 게 아니라, 후보로 나선 사람이 자기 주변 사람을 동원한 것입니다. 철저히 조직선거입니다. 조직이 없는 사람은 일반 국민에게 인기가 높아도 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국민경선인단 107만 명 가운데 스스로 국민경선단에 참여한 사람은 몇 명쯤일까요?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국민경선이라고 외친다면 낯 뜨겁습니다.

이번 야당 경선은 규칙이 급하게 정해진 탓인지 처리규칙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습니다. 국민의 관심을 끌려고 시작한 국민경선제가 오히려 국민이 눈을 돌리게 하는 것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 딱합니다.

투표할 때 끝까지 듣지 않은 채 중간에 후보를 고르고 전화를 끊으면 기권으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투표방식은 일반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전화로 열차표를 예매할 때, 안내 말이 길게 나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끝까지 듣지만, 다음에 예매할 때에는 굳이 다 들을 필요 없이 원하는 단추를 누르면 처리됩니다. 열차표를 파는 쪽도 굳이 끝까지 들으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표를 사려는 사람 뜻을 제대로 확인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국민경선 투표에서는 끝까지 듣지 않고 후보를 고르고 전화를 끊는다면 투표를 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했다 하니 일반 상식과 다릅니다. 처리방식은 일반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꼭 일반 상식과 달리 처리해야 한다면 미리 유권자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투표자의 뜻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당 선관위가 전화를 걸어야 투표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경선단에 등록할 때에는 스스로 전화를 걸어 등록했는데, 투표할 때에는 선관위가 전화를 걸어 줄 때에만 투표할 수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뜻을 모으는 것이라면 유권자가 전화를 받아 기계음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따라 대답하게 하는 것 외에, 유권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 투표할 길도 열어놓아야 맞습니다.

규칙을 허겁지겁 만든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규칙을 경선 직전에 후보들에게 던져 동의하라고 압박할 것이 아닙니다. 규칙에 따라 경기를 치르는 것이므로 경기에 나서는 사람이 충분히 살펴보고 규칙에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정권을 잡을 목적으로 뛰는 정당이 곧 다가올 경선 규칙도 미리 만들지 못했다니 제대로 된 정당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경선 규칙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많습니다. 경선은 경쟁력 있는 좋은 후보를 뽑자는 것입니다. 경선규칙에서 불합리한 것이 나타날 수 있지만, 자기에게 유리한가 아닌가로 규칙의 공정성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투표에는 당원과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규칙을 목적에 맞게 유연하게 운용해야 합니다. 내가 누굴 찍는지가 중요하지, 규칙 때문에 찍은 것을 헛일로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 지도부의 편파성도 자주 도마에 오릅니다. 볼썽사나운 불공정 시비를 더는 안 보길 기대합니다.

*출처: 자유칼럼그룹. 고영회 <산소리>. 2012년 9월 6일

[이 게시물은 행개련님에 의해 2017-07-04 17:13:21 가회포럼 1에서 이동 됨]
0 Comments